『 흔히 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니체가 철학자로서 “신은 죽었다.” 했는데
“무식한 놈. 자기가 무엇이라고 신이 죽었다고 하느냐. 무신론은 무식한 것이니까.” 하고 끝나면 안됩니다.
니체가 어떤 각도에서, 왜 그 말을 했는가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 철학을 따질 때냐.”하고 무시하면 안됩니다.
철학의 근본 원리를 풀어주고, 니체의 입장을 얘기해 주면서 새로운 것을 얘기해서 따라오게끔 해주어야 합니다.
철학자들도 철학을 연구하면서 더 다른 세계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무조건 믿어라. 따라와라. 바쁘다.”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그냥 가집니까.
꼴뚜기도 문어가 가자고 하면 “어디를 왜, 어째서 가는 것입니까.”
묻고서 다 이해가 되어야 가지 그냥 가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꼴뚜기도 한자리 해먹게 되었다. 세상이 뒤바뀌었다. 바다가 육지 되었다니까.
그러니까 너도 한자리 해먹을 수 있다.”고 해도 자기가 알고 깨닫기 전에는 안 갑니다.
꼴뚜기도 무언가를 기다렸기에 그 꼴뚜기의 상황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기 것만 주장하고 그 외는 버리고 없애 버리라고 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문제는 풀어야 할 것입니다.
몰살시키고, 까뭉개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 인도해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의사라면 탈진된 사람을 회복을 시켜야 합니다. 이해가 갑니까.
이런 니체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니체는 유명한 철학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에게 최고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나막신, 고무신이냐. 죽었다고 하게.”합니다.
그러나 니체가 어떤 위치와 입장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먼저 풀어 주어야 합니다.
니체를 중심해서 뭉친 사람들은 니체의 말이 아니면 안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신이 죽었다고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니체는 수도생활을 하다가 기독교로 갔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거기에 갔던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좋은 이론이 있으면 받아들이려고 갔던 것인데 가서보니 기독교가 타락되고, 부패되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너희가 세상을 구출할 수가 없다.”했고,
“타락된 것을 보니까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그렇게 타락되도록 놔두지를 않으리라. 너희 하나님은 죽었다.”고 그런 의미에서 한 것입니다.
비유를 하면 이런 것과 똑같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있고, 남자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그 남자를 보니까 평소에는 깔끔하고 깨끗하게 놀았는데 어느 날 보니까 너무 더럽게 놀았습니다.
옷도 더럽고, 와이셔츠도 더럽고, 밥 먹자고 해서 집에 가니까 라면만 삶아 먹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눈치를 챘습니다.
그가 기독교가 부패되듯이 부패된 짓을 하고, 웃기게 사니까 ‘아, 애인이 죽었구나.’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는 돌아다니면서 누구를 만날 때마다
“그 사람 애인이 죽었다네.”하고 돌아다녀서 그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 소리가 그 여자에게까지도 들어갔습니다.
그 소문을 들어보니 자기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기에 가만히 안 있고,
다른 여자를 시켜서 그렇지 않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을 상징한 것입니다.
남자는 기독교를 상징한 것이고, 친구는 니체의 입장입니다.
여자가 직접 안 나타나고 가까운 다른 여자를 통해서 자기가 안 죽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그 여자의 인격을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니체도 기독교에 갔을 때 부패되었으니까 떠나버렸습니다.
그와 같이 신(하나님)도 기독교가 부패하니까 떠나셨겠다.고 했어야 합니다.
깊은 단계는 자기를 통해서 풀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냥 생땅으로 풀기는 힘듭니다.
자기의 경험을 갖고, 자기 체험을 갖고서 풀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니까 간단하잖아요.
자기도 왜 기독교를 떠났느냐를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기독교가 잘 했으면 거기에 붙어서 강의라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부패된 것을 보고 떠나듯이 하나님도 부패되면 자기같이 떠나가는구나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체험과 자기의 입장을 몰랐습니다.
자기의 입장을 보면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자기 입장으로 놓고서 이해를 하면 다 이해가 됩니다.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귀니까 떠났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으니까 떠난 것입니다.
마음에 안 맞고, 꼴 보기 싫으면 떠나는 것입니다.
떠난 것을 모르고 죽은 것으로 봤던 것입니다. ‘여자를 사귀더니 죽었구나.’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떠난 것입니다.
이것을 봤어야 했습니다.
“안 죽었습니다. 왜 죽겠습니까. 본인이 떠나듯이 떠난 것입니다.”하는 것입니다.
니체의 허점이 그렇고, 니체는 거기까지 못 내다 봤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창세기를 읽어본 수준이면 하나님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관리하다가 인간(아담과 하와)이 타락하니까 떠났다가 1600년만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노아 때 “노아야, 너는 완전한자다.”라고 칭찬하면서 나타나셨습니다. 이와 똑같습니다.
니체는 말을 잘못해서 묶여서 더 이상 못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 밖에 못 갔습니다.
기독교의 타락으로 인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도 누가 타락되었을 때 함부로 말을 하면 자기도 묶입니다.
그래서 잘 보고 지혜롭게 판단하고 가야 합니다.』
위의 내용은
S.A.키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되는 독일 철학자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에 관한 의문에 관해 제가 아는 선생 님께서 답변해주신 내용입니다.